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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의 죽음과 마주하기 위해 나는 지금도 싸우고 있다.

강아지를 키우는 법/반려견 병관리

by 반려동물 2022. 6. 3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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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의 죽음과 마주하기 위해 나는 지금도 싸우고 있다.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별의 날은 갑자기 찾아온다.
어쩌면 그것은 내일일지도 모른다.지금 눈앞에 있는 반려견이 사라졌을 때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느 날 갑자기 간 미미

카페에서 키우지 못한다는 글을 읽고 데려와 쭉 개와 함께 살아왔다.
어른이 된 지금보다 어린 시절이 더 능숙하게 애견들을 배웅해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른이 되면서 인생의 새콤달콤한 맛을 경험하고 생명을 쉽게 보낼 수 없게 됐다.
왜 그런지 몰라도 분명 생명의 존귀함을 더 깊이 알게 된 탓인지도 모른다.
7세 무렵 심장질환이 발견돼 매달 병원 다니기가 필수였다.
그래도 매일 투약만 지켰다면 일상생활은 할 수 있었다.
오퍼도 많이 했다.
유치 유잔증 운영, 2회 유선 종양 운영, 피임 수술.
그럴 리가 없는데 이대로 계속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착각하게 해주는 정도로는 건강했다.
14세가 되면서 치주질환이 심해져 발치를 권유받았다.
나이도 나이여서 전신마취는 무서웠지만 이마저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오퍼날 폭탄 저기압으로 수도권은 폭설이 내렸다.
내가 사는 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날 아침에 동물병원에 미미를 맡기고 있었다.
오퍼를 견딜 수 있는 신체인지 검사를 하기 위해서다.
검사 결과는 양호했다.
오퍼는 오후라고 해서 한번 집에 왔다.
오퍼에 입회하기 위해 다시 집을 나섰다.
편도 40분 거리를 차로 가는 길에 눈이 내렸다.
순식간에 쌓이는 눈
여기저기서 차량이 오도 가도 못하는 가운데 울며 겨자먹기로 오페라의 입회는 포기하게 됐다.
순간 불쾌한 예감이 가슴을 스쳤다.
하지만 오퍼는 잘됐다.
"내일 데리러 와 주세요"라고 전화 너머로 닥터가 말했다.
다음날 10cm 가까운 강설이 있었기 때문에 캐리백을 들고 기차로 데리러 가기로 했다.
택시가 잡히지 않자 가까운 역까지 눈에 밟히며 마냥 걸었다.
빨리 미미가 보고 싶었다.
겨우 도착한 병원에서 대면한 미미는 확실히 건강해 보였다.
눈 속을 둘이서 걷고, 전철을 타고, 기로에 도착했다.
집에서는 동거견의 공주와 캐리가 미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부터 미미를 위해 부드러운 식사를 준비했다.
다소 번거로웠지만 미미를 위해 손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싫은 예감은 예감에 불과했다고 안도했다.
미미 또한 불린 말린 푸드와 통조림을 맛있게 먹어주었다.
밤에도 같이 잤다.
병원 때와 달리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역시 우리 집이 최고라고 말하는 듯했다.
다음날 다시 미미를 위해 부드러운 식사를 준비했지만 해바라기는 입을 대지 않았다.
그때는 발치 후가 아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개들을 돌보기 위해 미미 곁을 떠났다.
불과 몇 분의 찰나였다. 
돌아오자 미미는 침착하지 못하고 방안을 돌아다니며 침대에 들어가거나 나가 있었다.
"왜 그래?"라고 말하고 나서 나는 바닥에 앉았다.
그러자 미미는 내 무릎을 타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평소와 다른 소리로 심장이 뛰었다.
미미는 스스로 무릎을 타고 오는 아이가 아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조심조심 흔들어 보았다.
그때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던 것 같다.
머리가 하얗게 질렸다.
황급히 인공호흡을 해봤다.
그래도 미미는 움직이지 않았다.
미미가 죽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잠시 나는 시체가 된 미미를 상대로 여러 가지 일을 해 보았다.
예를 들면 심장 마사지.
올바른 방법 따위는 몰랐지만 필사적이었다.
홈닥터는 원거리여서 집에서 5분 거리에 낯선 동물병원으로 미미를 데려갔다.
그곳의 닥터는 미미에게 청진기를 대고 심폐 정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아까까지 건강했어요」라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미미는 죽은 것이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제 안에서 감정을 잘 처리하지 못했다.
단지 다시는 살아 있는 미미를 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친한 친구나 친척에게도 미미가 죽었다는 것은 말할 수 없었다.
반 년 동안.
미미의 죽음을 계기로 나는 펫로스 카운슬러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 보고 알게 된 것은 누구보다 자신이 펫로스였다는 것.
잠을 못 자거나 눈물이 멈추지 않거나, 언제 어디서나 갑자기 미미를 떠올리며 정서 불안정이 되기도 하고….
나중에는 미미의 죽음을 숨긴 것이 애초에 실수였다는 것도 깨달았다.


펫로스란?
우선 펫로스는 병이 아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에 따른 비탄반응으로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비탄이란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에서 생기는 깊은 마음의 고통과 슬픔으로 누구나 혼자 마주하고 견뎌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비탄은 강한 감정 내지 정서적 고통으로 여겨진다.
종종 정신 상태가 위중해져서 우울증이나 자살로까지 몰리는 분들도 계시지만 어디까지나 펫로스가 병명이 아니라는 점은 여러분이 기억해주기 바란다.
나는 미미가 죽었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데 반년이 걸렸다.
말하자면 모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줄 것은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기 전까지 아오이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며 편안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늘 갈등했다.
결과 좀 더 일찍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기분을 공유받음으로써 이렇게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미미에게 편지도 썼다.
지금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미미와의 추억, 미미가 사라져 쓸쓸한 일.
미미에게 전달할 길은 없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아직도 동거견의 공주와 캐리가 있었다.
아오이에게 못했던 일들을 두 마리에게 해주기로 맹세했다.

미미가 죽은 지 2년.
공주도 캐리도 건강했다.
특히 캐리는 미미와 달리 큰 병이 난 적은 없었다.
오퍼도 거세 눈치료 정도로, 분명 미미보다는 장수할 것이라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가족이 병으로 입원하게 됐다.
필연적으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늘면서 캐리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고지질 간식을 주게 됐다.
오랜 입원이었다.
이제 퇴원의 전망이 섰을 무렵, 캐리의 이변을 깨달았다.

먹방귀신이 밥을 먹지 않는다.
게다가 구토를 했다.
오늘 하루 상황을 보고 내일 병원에 가자.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실수였던 것이다.
급성 췌장염이었다.
담관에도 이상이 있어 긴급 입원을 하게 됐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건강했던 존이 순식간에 약해져 간다.
나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밥을 먹을 수 없다.
세울 수 없다.
황달이 떴다.
설사가 멎지 않다.
구역질이 멈추지 않는다….
아주 잠깐 동안에 캐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나는 죽은 미미에게 기도를 계속했다.
아직 데려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래서인지 캐리는 고통받고 고통받고 고통스러우면서도 계속 살아주었다.
두 차례 수혈도 했다.
며칠 사이에 다시 오퍼도 했다.
어떻게든 극복했지만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심한 통증을 제거하기 위해 모르핀 같은 강한 약을 써서인지 늘 의식이 몽롱했다.
그런데도 매일 내가 면회를 가면 무거운 눈꺼풀을 들고 훌쩍 일어나려 했고 어색한 움직임으로 손가락을 핥아줬다.
식탐이 많고 응석받이의 존귀가 사실 굉장히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알게 된 것이 기뻐서 이제 맘대로 해도 돼라고 나는 말했다.
다음날인 4월인데도 눈이 내렸다.
또 눈이다.
미미가 가버렸을 때도 눈이었다.
어쩐지 「가려면 오늘이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상태가 급변해 소생 조치에 들어갔습니다."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냥 캐리는 오늘 가는구나 생각했다.
몸이 아프고 나서 2주만이었다.
2주 전까지만 해도 건강하게 산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믿을 수가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근데 그게 현실이었어.
병원에 도착하자 세 명의 수의사가 캐리를 위해 애써주고 있었다.
"50분 심장 마사지를 하고 있는데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 "이제 됐어요"라고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다.
왜냐하면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분명 '지금 캐리는 가버렸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미보다 오래 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캐리는 13세에 죽고 말았다.

펫로스가 다시 생겼다
미미 잃은 상처가 이제 막 아물어 왔는데 이번에는 캐리를 잃었다.
끝내 입원 중인 가족을 만나게 하는 일도 이뤄지지 않았다.
캐리가없어지면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개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산책을 위해 아침 5시에 일어나는 습관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지만.
미미 때와는 달리 캐리를 귀여워해 준 친척, 친구에게는 곧바로 캐리의 죽음을 보고했다.
모두들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캐리의 죽음을 애도해 주었다.
귀여운 아이였다.
잊지 않을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놀랄 만큼 마음이 편해졌다.
혼자서 끌어안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의 중요성을 몸소 실감했다.
주위에 나의 슬픔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좋았다.
캐리의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캐리의 죽음에 따라 나는 반려동물 간병인 공부를 시작했다.


펫로스 극복법
반려견을 잃은 분에게.
우선 울고 싶은 만큼 울고, 제대로 배웅을 합시다.
호화로운 장례를 치르라고 할 것이 아니라 결말을 짓도록 합시다.
그리고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반려견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떤 사소한 추억이라도 좋기 때문에 '그때 이런 일이 있었다'거나 '그 아이는 이런 아이였다'거나.
그것만으로도 꽤 구원받을 수 있어요.
만약 주위에 아무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을 때는 인터넷 게시판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반려견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사이트에서 비슷한 슬픔을 공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혼자서 조용히 맞서고 싶은 사람은 반려견에게 편지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신이 얼마나 애견을 사랑했는지를 편지로 했기 때문에 전해 주세요.
그래도 펫로스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분은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은 펫로스를 전문으로 하고 있는 상담사도 존재합니다.
그래도 아직이라고 말하는 분은 양부모 사이트 등에서 새로운 애완동물을 맞이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물론 죽은 아이를 대신할 아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그것을 알고 다른 생명을 구하는 것도 펫로스 탈피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버린 그 아이에게 해줄 수 없었던 일을 다른 명으로 만들어 주세요.
그것이 무리라면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미미가 떠난 지 2년.
캐리가 떠난 지 석 달.
솔직히 지금도 슬프고 외롭습니다.
"당신네는 아직 고양이가 있어서 좋네"라고 사람들이 말하지만, 고양이가 있다고 해도, 예를 들어 10마리 개가 더 있어도 미미와 캐리가 사라진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도 두 마리가 사라진 것을 저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당신도 우선 반려견의 죽음을 받아들이세요.
매우 힘든 일이지만,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며, 펫로스 극복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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